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지 버나드 쇼 (문단 편집) === 사례 === >'''내 언젠가 이 꼴 날 줄 알았다. [BR]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버나드 쇼의 묘비명으로 세간에 알려진 문장. 한국에서는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라는 의역된 문장으로 '''일단은''' 알려져 있다. '우물쭈물'이라는 표현의 사용은 2006년 KTF 쇼(show) 광고 캠페인에서 사용된 것이 각인된 것이라고 한다.[[https://blizen.tistory.com/95|#]] 그러나 이 문장은 그 이전 과거부터 이미 국내에 널리 알려져 있던 인용구로서, 생전의 [[성철(승려)|성철]] 스님도 이것을 최고의 묘비명이라고 평하기도 했고, [[법정(승려)|법정]] 스님도 90년대 말 '샘터' 잡지에 기고하던 자신의 수필에 이 문장을 그대로 인용하여 소개하기도 했다.[* 1997년에 법정 스님이 만 65세가 되었을 때 '노인 교통수당 안내문'을 받은 후, 인생의 마무리에 대해 고찰하는 수필을 샘터 잡지에 기고한 적이 있었는데, 바로 거기에 해당 문장이 인용되었다. 해당 수필은 훗날 '아름다운 마무리'라는 제목의 단행본에도 실렸다.] 이 묘비명은 [[이기호(소설가)|이기호]]의 단편집 제목으로 재활용되기도 하였다. 정확한 이기호 소설집의 제목이자, 해당 소설집에 실린 단편의 제목은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그리고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SBS)|뿌리깊은 나무]]의 캐릭터 이방지가 18화에서 무휼 군대에게 포위되었을 때 이 대사를 쳤다. 일단 1985년 8월 20일자 동아일보의 칼럼에서 정확히 해당 해석이 발견되며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85082000209201013&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5-08-20&officeId=00020&pageNo=1&printNo=19656&publishType=00020|#]], 80년대의 다른 다양한 신문 기사에서도 여러 번 발견된다. 이후 8~90년대에 걸쳐 다양한 저작물이나 매체에서 수없이 반복되어 소개되는 것으로 보아, 국내에서는 최소 80년대 중반 이전부터 이미 이 해석이 널리 퍼져 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해당 문장은 "이만큼 오래 살았으면 이렇게 되는(=죽는) 게 당연하지"로 번역하여 '''죽음이 별 거 있냐'''라는 의미에서 고인이 자신의 죽음마저도 풍자했다는 의미를 나타낸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또한, 모든 배경을 무시하고 문장을 기계적으로 번역한다면 "내가 충분히 오래 지냈다면 이런 식의 일이 올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정도에 가깝다. 어느 쪽이 맞든 간에 좌우지간 원문에는 '우물쭈물'에 해당하는 뉘앙스가 없는 것은 사실.[* 동양권에서는 영어에서 부사적으로 쓰이는 [[전치사]]의 의미를 오독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여기서는 around를 '주변을 맴돌다' 정도로만 알고 있다가 발생한 오역일 가능성이 크다. around에는 '머무르다'의 의미도 있으며, 아무리 감안을 해 줘봐도 '별 생산적인 일도 안 하고 생각 없이 그냥 살다' 정도로밖에 번역할 수 없다(hang around, sit around등의 경우가 그렇다). 한국어의 '그냥 있어' 정도의 의미를 떠올리면 될 듯. '우물쭈물'은 아니다.] 우물쭈물 안 하고 열심히 산다고 해서 안 죽는 것이 아니기에 의미도 맞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위의 '언젠가 이런 꼴이 될 줄 알았지' 정도가 가장 원 뜻에 가까운 번역이라 할 수 있을 듯. ~~그런데 묘비명을 버나드 쇼 본인이 썼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생전의 버나드 쇼는 이런 말을 할 정도로 우유부단한 성격도 아닌 매우 독설적이고 적극적인 사회비판을 해왔던 사람이다. 그런 인생을 오래 살았음에도 제국주의와 제1,2차 세계대전이라는 인간 사회의 밑바닥을 다 본 사람으로써 자기 스스로도 가진 힘에 비해 현실을 제대로 바꾸지 못하고 우물쭈물대다가 이런 일이 터지는 걸 막지 못했다는 자아비판+자학적 풍자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는 것.] 그런데 버나드 쇼는 사후 화장되어 그 재가 자신이 살던 집 '쇼스 코너(Shaw's Corner)' 정원 구석구석에 뿌려졌다. 따라서 따로 묘비를 남기지 않았고, 그나마 묘석이라 할 만한 거라고는 집 근처에 세워진 성녀 [[잔 다르크]]의 동상이 전부다. 즉 묘비명 따위를 남길 여지가 없었다는 것이다. 버나드 쇼의 묘비 사진이라고 떠도는 것 역시 과거의 어느 광고에 나왔던 이미지가 달랑 하나만 있고, 그 이미지 하나만 곳곳에서 복사 붙여넣기 되고 있을 뿐이다. 그 외 다른 사람들이 찍은 사진은 단 한 장도 없다. 따라서 광고 제작자가 임의로 만들어 낸 묘비 이미지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영미권에서도 이 묘비명은 버나드 쇼의 것으로 널리 알려져 여기저기에 떠돌고 있으니 더더욱 수수께끼이다. >"당신은 아주 낡고 오래된 골동품처럼 내 생명을 보전시키려고 하지만 나는 이제 글렀어. 마지막이오. 나는 죽습니다." '''진짜 [[유언#s-1]]'''. >"애국심이란 단지 이 나라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이 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우월하다고 믿는 신념이다." >"가능한 일찍 결혼하는 건 여자의 비즈니스, 가능한 늦게 결혼하는 건 남자의 비즈니스." 여자는 젊을 때(리즈 시절) 얼른 --스펙-- 좋은 남자 만나 결혼하고 싶어하고, 남자는 본인 인생 즐기다 천천히 책임을 져야하는 결혼을 하고 싶어한단 뜻. 당연하지만 사람에 따라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니 그냥 농담일 뿐이다. >"불행한 결혼생활을 보내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이다." >Q. 금요일에 결혼한 사람은 평생 불행하다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 당연한 말이죠. '''금요일이라고 예외겠습니까?'''[* 당연히 이것도 그냥 농담이다. 쇼의 결혼생활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아내와 사별할 때 매우 슬퍼했다고 한다.] >"젊음은 젊은이에게 주기에는 너무 아깝다."[* 원문은 "Youth is wasted on the young". [[비긴 어게인]]의 OST인 [[Lost Stars(노래)|Lost stars]]에서 인용되기도 하였다. 쉽게 말해 '젊은이들은 젊은 게 귀중한 줄 모른다'로, 늙어서야 젊음이 중요한 줄 알게 된다며 젊음의 가치를 역설한 문장.] >"남들이 오만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 정도의 자신감은 쓸모없다." 가장 유명한 소설가 12명을 꼽아 달라는 요청에 자기 이름을 12번 적으며 한 말. 그것도 그냥 '조지 버나드 쇼, 조지 버나드 쇼…', 이렇게 쓴 게 아니라 'G. 버나드 쇼', 'G. B. 쇼', '조지 쇼', '쇼, 조지 버나드' 이런 식으로 썼다.[* 비슷한 일화가 영국의 문학가인 [[서머셋 몸]]에게도 있다. 명작으로 꼽을 만한 100편의 책을 추천해 달라는 요청에 '9권밖에 추천할 수 없소. 난 아직 9권밖에 쓰지 못했거든.'이라고 대답했다고.] >"아니오, 내 얼굴과 당신의 머리를 물려 받은 아이가 탄생할 수도 있겠지요." 세계적인 발레 스타 [[이사도라 덩컨]][* 스페인의 배우 엘레오노라 두세가 한 이야기라는 설도 있다. 다만 이사도라 던컨 설이 더 일반적. 세간에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마릴린 먼로]]의 이야기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이 '내 얼굴과 당신의 머리를 물려 받은 아이가 태어나면 근사하겠지요'라는 말에 대한 대답. '그 얼굴로 그런 소리를 하다니 당신 멍청한데다 나 닮아서 못생김'이라고 동시에 에둘러서 까는 것이다. 다만 쇼를 20년 이상 옆에서 지켜본 헤스캐드 피어슨이 쓴 평전에 따르면, 그냥 좀 정신이 이상한 어떤 여성이 한 말에 대꾸한 것이며 덩컨과는 무관하다고 한다. >"가장 어리석은 유인원에게 말이 통하기라도 할까? 해 줄 말은 없다." [[YMCA]]를 조직해 퇴폐문학 반대운동을 벌였던 미국의 목사이자 정치인 앤서니 컴스톡(Anthony Comstock, 1844-1915)이 쇼의 작품들을 저질이고 문제가 많다고 비난하자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투로 이렇게 일축했다. 이 한 마디에 [[가성비 댓글|컴스톡은 길길이 날뛰었다고 한다.]] 하긴 당연히 [[창조설]] 믿던 양반에게 이런 독설을 날렸으니… 컴스톡은 매우 수구적이고 기독교 원리주의적 성향인 인물이어서 당대에도 적이 많았다. 오죽했으면 '컴스톡에게 있어 가장 저질인 범죄자는 임산부(알몸인 [[아기#s-1]]를 낳았으므로)'라는 식의 [[블랙 코미디]]로 신문 시사만화에서도 단골 조롱거리일 정도였다. >"크라우스를 처벌하자는 것은 악독한 정권을 향한 어리석은 복수심이 낳은 촌극일 뿐이다. 원작대로 제대로 연기한 것을 호평해야지, 그것을 엉터리 복수심으로 얽매는 것부터가 문제다. 그를 처벌한다면 원작을 쓴 [[셰익스피어]]부터 나치 협조죄로 처벌하고자 무덤에서 파내서 기소해야 할 것이다!" [[나치 독일]] 치하에 연극 [[베니스의 상인]]에서 악역인 [[유태인]] 샤일록을 훌륭하게 연기한 배우 베르너 크라우스(Werner Johannes Krauss, 1884-1959)를 종전 후에 나치 협조로 재판에 세운 것을 비난하며 하던 말. 실제로 이 일에 전세계 연극, 영화계는 엄청난 비난을 가했다. 연합국은 물론이요, 유태인들도 옹호했을 정도. 크라우스 본인도 이에 당당하게 맞섰다. 결국 나치에 동조했다는 억지 이유로 벌금형을 선고했지만 이조차도 거센 비판을 받았으며, 유럽 연극계에서 벌금도 모금해서 대신 내 줬다. 이 사건으로 인해 크라우스는 몇 해 동안 연극 무대를 쉬어야 했지만, 이후 복귀하여 [[서독]] 연극 공연에 이바지하며 문화훈장이나 공로상도 받고 연극계의 거물로 추앙받으며 천수를 누렸다. [[베니스의 상인]] 문서에 나오듯이 크라우스는 원작의 내용대로 훌륭하게 연기했을 뿐이었다. 굳이 책임의 소재를 물을 것이라면, 그의 재능을 쓸데없이 프로파간다에 써먹은 나치 정권을 비판해야 할 일이다. >"실수하며 보낸 인생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인생보다 존경스러울 뿐만 아니라 더 유용하다." >"제도가 저절로 굴러갈 것이라고 믿는 것은 정치적 게으름일 뿐이다." >"술을 마시다가 반이 남은 술병을 보고 '아, 술이 반밖에 없구나'라고 말하면 비관론자, '아, 술이 반이나 남았군!'이라고 말하면 낙관론자다." 낙관론자와 비관론자의 차이에 대해 예시를 든 말. 어린이들을 위해 술을 물로 순화한 버전이 유명하다. 한 번은 [[윈스턴 처칠]]에게 이런 전보를 보낸 적이 있다. >"제 연극의 초연 때 좌석 2개를 예약했으니 친구분과 같이 오시지요. '''친구가 하나라도 있다면 말이죠.'''" 그러자 처칠은 이런 답장을 보냈다고. >"초연에는 참석이 불가능합니다. 두 번째 공연에는 참석하겠습니다. '''만약 공연이 열린다면 말이죠."''' 이 일화는 2015년 기준 고2 영어 교과서에 실리기도 하였다. 쇼의 전보야 당연히 처칠에게 "님 친구 없잖음ㅋ"하고 놀리는 것이고, 처칠의 답장은 "님 연극은 겁나 형편없어서 초연하자마자 망할걸ㅋ"이라고 받아친 것. 다만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는 알 수 없다. 이 일화가 처음 알려졌을 때의 주인공들은 버나드 쇼와 처칠이 아니라, 처칠의 아들인 란돌프 처칠과 노엘 카워드(Noel Coward)이기 때문이다. 명백한 증거가 없는 풍문에 가까운 이야기라 출처도 불분명하다. 자세한 건 [[http://quoteinvestigator.com/2012/03/25/two-tickets-shaw/|참조]]. >"존경할 만한 두 시민이 공공연하게 범할 수 있는 가장 뻔뻔하고 멍청한 짓거리." [[오페레타]] <제인 애니 또는 선행상>를 까면서. 독설치고는 평범(?)한 듯 싶지만, 사실 이 오페레타의 제작자가 바로 [[코난 도일]]과, <[[피터 팬#s-1]]>의 작가인 J.M. 배리이다. 심지어 이 오페레타의 완성도가 얼마나 엉망이었는지, 대중들도 버나드 쇼의 이런 독설에 동감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그의 작품이 미국에서 무대에 공연되었는데, 사정상 그 공연을 관람할 수 없었던 쇼가 연극의 여주인공이었던 코넬리아 스키너에게 전보를 보냈다. >"정말 훌륭했소." 독설가인 쇼에게 칭찬받을 줄은 몰랐던 코넬리아가 답례로, >"뭘요, 정말 별 것 아니에요." 쇼는 답장을 보냈다. >"아니, 당신 연기 말고 내 작품 말이오." 이에 발끈한 코넬리아는 이렇게 맞받아쳤다. >'''"그러니까요."''' 쇼는 문학 평론가이자 작가인 [[G. K. 체스터튼]]과도 친분이 있었는데, 마른 체구였던 쇼에 비해 체스터턴은 몹시 뚱뚱했다. 어느 날 체스터턴이 "쇼, 자네를 보면 영국이 심각한 기근 상태에 빠졌다는 것을 알 수 있겠군."이라며 놀리자 쇼가 받아쳤다. "[[아일랜드 대기근|그리고 자네를 보면 그 원인이 자네 때문이라는 것도 알겠지.]]" 당시 영국이 아일랜드에 가한 수탈과 탄압을 이중으로 비꼬았다. 그런데 한 가지 웃긴 것은 쇼가 체스터턴보다 훨씬 오래 살았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에 대해 라이벌 의식을 느꼈는지 셰익스피어 숭배자들을 조롱했다. 특히 [[오셀로]]에 대해서 "피부 아래로 파고드는 인물 묘사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다"고 비평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셰익스피어는 다른 사람이 이미 쓴 내용을 뒤따라 썼을 때에만 진정으로 훌륭한 극작가"라고 비아냥댔다. 그리고 "셰익스피어는 양심이 없었고, 나도 그렇다."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 중에 [[피그말리온]], 시저와 클레오파트라, 성녀 조앤은 각각 [[말괄량이 길들이기]], 줄리우스 시저, 헨리 6세와 대립 및 비교가 되게 만들어졌다. 자신의 각본으로 만든 공연이 성황리에 끝나고 나서 쇼가 무대 인사를 하자 관객들이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런데 그 중 한 관객만 심한 야유를 보내고 있었다. [[갑분싸|분위기가 싸해지는]] 가운데 쇼의 대답이 압권. "저도 저 신사분의 의견에 완벽히 동의합니다. 그런데 우리 의견에 반대하는 이 수많은 관객 앞에서 우리가 뭘 어찌 할 수 있단 말입니까?" [[동귀어진|자신을 못난 관객과 함께 비하하여]] 에둘러 깐 것. 극장의 분위기가 반전되어 다시 업된 건 당연지사. 이 재치 넘치는 멘트는 조지 버나드 쇼를 일약 런던의 유명인으로 만들었다. >"도대체 프랑스 사람들은 얼마나 이상한 사람들인가. 세상에서 가장 높은 탑이 있고 아무나 올라갈 수 있는데, 개방한 지 몇 주가 지났는데도 아직 아무도 자살하지 않다니. 만약 [[에펠탑]]이 런던에 있었으면 개시 첫 주에 사람들이 줄지어 떨어졌을 텐데."[* 에펠탑에서 첫 자살자가 발생한 것은 건설되고 나서 9년 뒤이다. 이후 실제 이 말대로 자살의 명소가 되어 프랑스에서 가장 자살자가 많은 탑이 되었다(...).] >---- >― 영국인의 우울함을 풍자하며 >"침묵은 경멸을 표현하는 가장 완벽한 방법이다." 버나드 쇼는 생전에 [[노벨문학상|노벨상]] 상금 수령을 거부했다. 그러나 그는 처음에는 상만 받고 상금 수령을 거부했다가, 결국 상금까지 수령한 희귀한 케이스가 되었다. 그 이유는 자신이 노벨상을 수상하자 도움을 요청하는 수천 통의 편지들이 쇄도했기 때문이었는데, 그 당시 그는 친구인 어거스틴 해먼에게 이렇게 털어놓았다. "상금 거부 소식이 보도된 뒤에는 상금을 거부할 정도로 부자라면 자신의 아이를 입양해 달라는 둥, 집 담보금을 갚아 달라는 둥 하는 편지들이 날아오더라. 그나마 가장 합리적인 것은 자기를 가정부로 써 달라는 두 여성의 편지였다." 그 직후 그는 상금을 수령했는데 그에게 날아온 편지들의 금액을 다 합쳐 보니 상금 총액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 사건을 겪은 후에 노벨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알프레드 노벨]]이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것은 용서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탈을 쓴 악마만이 노벨상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1914년 1월 7일 찰스 디킨스의 팬덤인 디킨스 펠로우십 회원을 방청객으로 소설 [[에드윈 드루드의 비밀]]의 가장 유력한 용의자인 존 재스퍼의 재판이 열리는데, 이때 배심원단장을 맡았다. 미국의 前 대통령 [[존 F. 케네디]]가 버나드 쇼를 영국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이때 케네디는 버나드 쇼에게 "미국이 장차 세계를 주름잡을 수 있을까요? "란 질문을 했는데, 거기에 대한 버나드 쇼의 대답은 이러했다. >"그럼요, 미국인들이 [[미국식 영어|영어를 제대로 한다면]] 말입니다." > “목젖까지 공산주의에 몸을 던지세요. 만약 여러분이 스무 살에 혁명가가 되고자 하지 않는다면 쉰이 넘어서는 가장 극한의 미친 늙다리 화석탱이가 될 것입니다. 반면 스무 살에 이미 '사회주의 혁명론자'라면 마흔이 되어서도 시류를 쫓아갈 가망이 좀 있습니다.” > [[파일:조지 버나드 쇼 명언.jpg]] > 인생에는 두 가지 비극이 있다. 하나는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 다른 하나는 이루어지는 것이다. (There are two tragedies in life. One is not to get your heart's desire. The other is to get it.) > 사람들은 1년에 두세 번이라도 생각이란 것을 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나는 1주일에 한두 번의 생각만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